V 납치범의 전화를 받았다. 등본 초본을 비롯하여 여차저차 서류를
준비하시고, 통장 사본은 팩스로 보내시오. 경찰에는 알리지 말라더라. 알리면 월급의 안위를
보장하지 않겠다고.
V 마침 오늘은 비번이라 집에서 딩가딩가
예정이었다. 내 월급을 살려서만 보내주십사 전화 너머의 납치범에게 애원하고는, 애마 '싸구려
자전거'를 몰고 집을 나섰다. 청바지에 흰 셔츠. 바람에 나풀나풀.
V 날씨가 좋았다. 패달을 밟아 가는 내 등짝에는 땀이 흘렀다. 동네급 도로를 무단횡단할 때 노려보던 경찰 아저씨가 등짝을 보자고 달려들 것 같아 무서웠다. 동사무소의 직원은 지루해하는 눈빛이었고, 학교가 파할 시간까지는 한가할 것이 분명한 문방구 주인은 지나치게 반갑게 수다를 건넸다. 유모차에 비끄러맨 풍선은 노랗고 빨갛고, 어묵인지 뭔지 꼬챙이를 든 아이의 입가는 엄마 루즈 훔쳐 바른 것처럼 엉망이었다.
V 좋았다. 바람과 사람과 풍경이 다 좋았다.
그 순간들만큼은 납치된 월급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. 가끔은 하릴없이 거리를 자전거로
쏘다녀 봐야겠구나. 그렇게 중얼거렸다.
V 월급은 어떻게 됐느냐구요?
글쎄요. 월급날이 되어 봐야 알겠네요.



